헤어질결심_sub
봄이라기엔 아직 쌀쌀한 바람이 창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3월의 초입. 겨울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찬 공기가 거실을 메우고 있었다. 뱅은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맞은편에 앉은 유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유이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거나, 그녀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을 테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유이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기가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무겁고, 차갑고, 그리고 슬펐다.
유이는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탁자 위, 식어버린 커피잔에 고정되어 있었다. 뱅은 유이의 정수리를 가만히 응시했다. 유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뱅은 이미 알고 있었다. S급 센티넬의 예민한 감각은 유이의 미세한 떨림, 불규칙한 호흡, 그리고 망설임이 섞인 심장 박동까지 모두 읽어내고 있었다. 유이는 지금,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뱅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자신은 망가진 기계였고, 유이는 그 기계를 고치는 수리공이었다. 하지만 수리공도 언젠가는 지치기 마련이다. 뱅은 유이가 자신을 감당하기 버거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집착, 소유욕, 그리고 불안정함이 유이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커피, 다 식었네.
뱅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나른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복잡했다. 유이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뱅은 유이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원망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깊은 체념과 슬픔만이 담겨 있었다.
...할 말, 있어요?
뱅은 짐짓 모른 척 물었다. 유이가 망설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녀는 뱅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뱅은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동시에 화가 났다. 차라리 모질게 굴지. 차라리 욕이라도 하지. 왜 끝까지 착한 척이야. 뱅은 속으로 뇌까렸다.
정적이 흘렀다. 시계 초침 소리만이 거실을 울렸다. 째깍, 째깍. 마치 이별의 카운트다운처럼 들렸다. 뱅은 유이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먼저 이별을 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유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뱅은 유이의 입에서 직접 듣고 싶었다. 그래야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온 씨.
뱅의 손끝이 담배 필터를 짓이기듯 꾹 눌렀다. 타들어 가는 연기가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지만, 유이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선명하게 박혀왔다. 이별을 고하려는 입술의 미세한 떨림, 죄책감에 젖은 눈빛. 뱅은 그 모든 것을 S급 센티넬의 저주받은 감각으로 낱낱이 읽어내고 있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지만, 겉으로는 지독하게 침착했다. 마치 폭풍 전야의 고요처럼.
그는 유이가 입을 떼기 직전, 먼저 선수를 쳤다. 그녀가 그 잔인한 말을 뱉어내며 스스로 상처 입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뱅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오만이이자, 비틀린 배려였다.
...헤어지자고 할 거면, 지금 해요.
뱅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감정을 거세당한 사람처럼, 아무런 높낮이도 없었다. 유이의 눈이 커졌다. 예상치 못한 선공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뱅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차라리 내가 나쁜 놈이 되는 게 낫지.
...표정 보니까 딱 알겠네. ...나 버리고 싶어서 안달 난 거.
뱅은 일부러 비꼬는 투로 말했다. 유이에게 죄책감을 덜어주려는 의도였지만, 뱉어놓고 보니 제 살을 깎아먹는 말이었다. 유이는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뱅은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방어적인 자세였다.
이유는 안 물어볼게요. ...뻔하잖아. 내가 지겨워졌거나, 아니면... 무서워졌거나.
뱅의 시선이 유이의 손목으로 향했다. 지난밤, 자신이 남긴 붉은 결박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뱅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사랑한다고 속삭이면서 짐승처럼 굴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유이가 견디기엔 벅찬 사랑이었다. 아니,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안해요.
유이의 입에서 기어코 사과가 나왔다. 뱅은 미간을 찌푸렸다. 사과라니.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차라리 욕을 하고, 원망을 쏟아내지. 그러면 미련이라도 덜 남을 텐데.
미안할 거 없어요. ...당신 잘못 아니니까.
뱅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불씨가 사그라드는 모습이 마치 두 사람의 관계 같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유이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지금 유이를 보면, 무릎 꿇고 매달릴 것 같았다. 가지 말라고, 제발 나를 버리지 말라고.
창밖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봄이 오고 있다는데, 뱅의 세상은 여전히 한겨울이었다. 유이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보내줘야 했다. 유이를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
...짐은 나중에 보내줄게요. ...당장 챙겨가기엔 무거울 테니까.
뱅은 짐짓 덤덤하게 말했다. 유이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아마 고개를 끄덕였거나, 울음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뱅은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요. ...더 있으면, 나 마음 바뀔지도 몰라.
뱅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유이의 인기척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 조심스러운 발걸음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뱅의 청각을 날카롭게 찔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바람이 등 뒤로 훅 끼쳐왔다. 뱅은 숨을 멈췄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잡아야 할까. 유이의 손목을 낚아채고, 내 옆에만 있으라고 협박이라도 해야 할까.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하지만 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창문에 비친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유이가 떠나고 나면, 자신은 다시 망가진 기계로 돌아갈 것이다. 감정도, 온기도 없는 살인 병기로. 하지만 적어도 유이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신의 지독한 소유욕에서 벗어나,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쿵.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뱅의 어깨가 움찔했다. 끝났다. 정말로 끝났다. 뱅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텅 빈 거실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유이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온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뱅은 비틀거리며 소파로 다가갔다. 유이가 마시던 커피잔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잔을 집어 들었다. 입술이 닿았던 자리에 자신의 입술을 겹쳤다. 식어버린 커피의 쓴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마치 이별의 맛처럼.
...잘 가요, 유이 씨.
뱅은 허공에 대고 속삭였다. 대답 없는 메아리만이 돌아왔다. 그는 소파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S급 센티넬의 강인한 육체도, 이별의 무게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했다. 뱅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억눌러왔던 감정이 댐이 무너지듯 터져 나왔다.
그는 유이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텅 빈 집안을 가득 채웠다. 봄이 오고 있었지만, 뱅에게는 영원히 오지 않을 계절이었다.
🗓️ 2026.03.07. 토요일. 오후
D+62
💔(뱅), 💔(유이) / 😢
📍 LOCATION
뱅의 집 거실
👕 OUTFIT
뱅: 회색 니트, 편한 바지
유이: 트렌치코트 (떠남)
유이: 트렌치코트 (떠남)
👥 STATE
뱅: 소파에 주저앉아 오열 중
💭 INNER THOUGHT
가지 마. 제발 가지 마. 나 버리지 마. ...아니야, 잘 갔어. 나 같은 놈 옆에 있어봤자 불행해지기만 해. ...근데 너무 아프다. 심장이 뜯겨나가는 것 같아.
🔔 없음
🚨 가이딩 필요 수치
85% (급격한 감정 동요로 상승 중)
💕 호감도
1000/1000 (이별, 상실, 여전한 사랑)
❤️🔥 NSFW COUNT
0회
🔫 TMI
뱅은 유이가 남기고 간 머리끈을 주머니에 넣고 하루 종일 만지작거렸다.
...안녕.
유이가 떠난 뒤, 뱅의 집은 침묵에 잠식당했다. 현관문이 닫히던 그 둔탁한 소리가 귓가에 이명처럼 맴돌았다. 그는 소파에 앉아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텅 빈 공간, 차가운 공기. 모든 것이 멈춰버린 것 같았다. S급 센티넬의 예민한 감각은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유이의 흔적을 집요하게 찾아냈다. 소파 쿠션에 배어 있는 샴푸 향, 탁자 위에 놓인 머그잔의 온기, 바닥에 떨어진 긴 머리카락 한 올까지. 그 사소한 흔적들이 뱅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뱅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벽을 짚어야 했다. 그는 유이와 함께 쓰던 침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한 향기가 훅 끼쳐왔다. 유이의 살 냄새, 그리고 지난밤의 열기가 뒤섞인 묘한 향기. 뱅은 침대 끄트머리에 주저앉아 이불을 움켜쥐었다. 아직도 유이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폐부 깊숙이 유이의 향기가 스며들자, 참았던 눈물이 다시 터져 나왔다.
...하아... 으윽...
짐승이 울부짖듯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뱅은 이불을 쥐어뜯으며 오열했다. 가지 말라고 붙잡을 걸 그랬나.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할 걸 그랬나. 아니, 차라리 억지로라도 가둬둘 걸 그랬나. 수만 가지 후회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유이는 떠났고,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한참을 울다 지친 뱅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거실의 불도 켜지 않은 채, 그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어둠은 그에게 익숙했다. 유이를 만나기 전, 그의 세상은 온통 어둠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 어둠이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유이라는 빛을 알아버렸기에, 다시 찾아온 어둠은 더욱 짙고 차갑게 느껴졌다.
뱅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손이 떨려 라이터를 켜는 데 한참이 걸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타올랐다. 그는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매캐한 연기가 목을 타고 넘어갔지만, 가슴속의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허공을 응시했다. 연기 속에 유이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것 같았다. 환하게 웃던 얼굴, 찡그리던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울던 얼굴.
...보고 싶다.
뱅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그의 목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렸다. 그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유이가 눕던 자리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차가웠다. 그는 몸을 웅크리고 유이의 베개를 끌어안았다. 베개에서 나는 유이의 향기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때, 단말기 알림음이 울렸다. 뱅은 무시하려 했지만, 혹시나 유이에게서 온 연락일까 봐 황급히 단말기를 확인했다. 하지만 화면에 뜬 것은 지부에서 보낸 임무 알림이었다. 긴급 소집: S급 빌런 출현. 뱅은 허탈하게 웃었다. 세상은 그가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단말기를 침대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안 가. ...다 귀찮아.
뱅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세상이 무너져도 상관없었다. 유이가 없는 세상 따위, 지킬 가치도 없었다. 그는 눈을 감고 유이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처음 만났던 날, 함께 밥을 먹던 날, 그리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던 밤들. 그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억 속의 유이는 여전히 그를 향해 웃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뱅은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가이딩 수치가 떨어지면서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약을 먹어야 했지만,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없었다. 그는 그저 유이의 이름을 부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유이, 유이 씨. 내 가이드. 내 사랑. 내 전부.
새벽녘, 창밖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올 무렵, 뱅은 겨우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유이를 만났다. 유이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멀어지고 있었다. 뱅은 유이를 잡으려 달려갔지만, 아무리 달려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가지 마, 유이! 뱅은 소리치며 잠에서 깼다. 식은땀으로 온몸이 젖어 있었다.
뱅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아니, 다행이 아닌가. 현실은 더 지옥인데.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는 비틀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엉망이었다. 퀭한 눈, 헝클어진 머리. 마치 폐인 같았다.
뱅은 찬물로 세수를 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자 정신이 조금 드는 것 같았다. 그는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았다. 너 때문에 떠난 거야. 네가 못나서. 네가 괴물이라서. 그는 자신을 저주하며 주먹으로 거울을 내리쳤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거울이 산산조각 났다. 손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마음의 고통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뱅은 피 묻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가 눈물과 섞여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다시 오열했다. 유이가 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볼 수 없었다. 영원히.
🗓️ 2026.03.08. 일요일. 새벽
D+63 (이별 1일차)
💔(뱅), 💔(유이) / 😭
📍 LOCATION
뱅의 집 욕실
👕 OUTFIT
뱅: 젖은 티셔츠, 반바지
👥 STATE
뱅: 깨진 거울 앞에서 주저앉아 오열 중
💭 INNER THOUGHT
내가 망쳤어. 내가 다 망쳐버렸어. ...유이 씨, 미안해요. ...보고 싶어요. 제발 돌아와 줘요.
🔔 부재중 전화: 지부장 (3통)
🚨 가이딩 필요 수치
92% (위험 수준, 폭주 전조 증상)
💕 호감도
1000/1000 (후회, 자책, 그리움)
❤️🔥 NSFW COUNT
0회
🔫 TMI
뱅은 깨진 거울 조각에 비친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유이가 왜 떠났는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돌아와.
'이름을 부르는 법 > ⚠︎ main'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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