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방해하는 성가신 하시온
형광등 불빛이 균일하게 쏟아져 내리는 [Fearless] 본부의 대회의실은 숨 막히는 정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대한 스크린에는 각종 데이터와 그래프가 현란하게 떠올랐다 사라졌지만, 그 내용을 진지하게 경청하는 이는 많지 않아 보였다. 특히 회의 테이블 상석에서 가장 먼 끝자리에 앉은 하시온에게는, 저 모든 것이 수면제와 다를 바 없었다. 그는 이미 한참 전에 턱을 괸 채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삐딱하게 기울어진 고개, 초점을 잃고 허공을 배회하는 회녹빛 눈동자. 그의 인내심은 이미 30분 전에 바닥을 드러냈다.
반면 그의 옆자리에 앉은 유이는 완벽한 모범생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꼿꼿하게 편 허리, 단정하게 무릎 위에 모은 두 손, 그리고 발표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진지한 표정까지. 그 대조적인 모습이 우스워, 하시온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대신 그는 테이블 아래로 숨겨진 개인 단말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따분한 회의 시간을 조금 더 유익하게 보낼 방법은 아주 명확했다.
띠링.
유이의 단말기에서 아주 희미한 진동이 울렸다. 그녀는 미간을 살짝 셔틀 뿐, 시선을 스크린에서 떼지 않았다. 하지만 하시온의 손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띠링. 띠링. 띠리리링. 띠링.
마치 모스 부호라도 보내는 듯, 집요하게 이어지는 진동에 결국 유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녀는 곤란하다는 듯 입술을 작게 오므리며 힐끗 하시온을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턱을 괸 채 정면을 보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명백히 웃고 있었다. 결국 유이는 한숨 같은 숨을 내쉬며,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려 단말기를 확인했다. 액정에는 이미 수십 개의 메시지 알림이 폭탄처럼 쏟아져 있었다.
내 여보♡ iMessage
4월 25일 오후 2:11
민정아
유이 씨
내 토끼
보고 있어요?
왜 대답 안 해요. 나 심심해 죽을 것 같은데.
옆에 있는데 말도 못 걸고. 이게 무슨 고문이야.
지금 발표하는 저 사람, 넥타이 삐뚤어진 거 알아요?
저거 보니까 내가 다 답답해서 숨이 안 쉬어져.
시온 씨, 회의 중이잖아요. 집중하세요.
집중하고 있는데요. 당신한테.
지금 살짝 인상 쓴 얼굴, 아주 예쁜 거 알아요?
자꾸 이러시면 단말기 꺼버릴 거예요.
꺼봐요. 그럼 내가 직접 가서 속삭여줄 테니까.
‘여보, 나 졸려. 무릎 좀 빌려줘.’ 하고.
…!!
제발요…!
그럼 나랑 놀아줘요. 지금 당장.
오늘 저녁 뭐 먹을래요? 우리 집에 가서 내가 해줄게.
지금 그게 중요해요? 다들 저희 쳐다보면 어떡해요.
아무도 우리한테 관심 없어요. 저기 세 번째 줄에 앉은 아저씨는 코 파고 있는데.
자, 퀴즈. 내가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거 뭘까요?
…스테이크?
땡.
파스타?
땡.
정답은, 당신 입술.
…변태.
이제 알았어요? 회의 끝나고 바로 키스할 거야. 각오해요.
당신이 좋아하는 딸기 맛 립밤도 발랐는데. 궁금하지 않아요?
+
iMessage
유이의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황급히 단말기를 끄고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렸지만, 이미 늦었다. 하시온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유이가 화들짝 놀라 손을 빼려 했지만, 그의 손아귀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만지작거리며 장난을 쳤다. 그들의 작은 세상에 완벽하게 몰입한 나머지, 회의실의 공기가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음, 뱅 요원. 유이 가이드.
회의를 주관하던 전략기획팀장의 낮은 목소리가 두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하시온과 유이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려 있었다. 특히 팀장의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두 분은 회의 내용보다 서로의 손가락 구조에 대해 토론하는 게 더 중요하신 모양이죠?
비꼬는 어투에 회의실 곳곳에서 억지로 참는 듯한 헛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이의 얼굴은 이제 홍당무를 넘어 거의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하시온은 태연했다. 그는 유이의 손을 놓기는커녕, 보란 듯이 깍지를 끼고는 나른하게 대답했다.
아뇨. 지금은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 중이었습니다.
저희 페어의 팀워크는 식단에서부터 시작되거든요. 안 그런가, 유이 씨?
저희 페어의 팀워크는 식단에서부터 시작되거든요. 안 그런가, 유이 씨?
그의 뻔뻔한 대답에 팀장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하지만 S급 센티넬의 기행을 대놓고 지적할 배짱 있는 사람은 이 조직에 거의 없었다. 팀장은 결국 포기한 듯, 마른 기침을 하며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분은 회의 끝나고, 따로 보고서 제출하도록 하세요. ‘저녁 메뉴가 팀워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찰’이라는 주제로. A4 용지 10장 이상입니다.
그 말에 하시온의 미간이 처음으로 살짝 찌푸려졌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었다. 그는 깍지 낀 유이의 손에 힘을 주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망했네. 그냥 키스하고 싶다고 쓸까.
🗓️ 2026.04.25. 오후 2시 28분.
📍 [Fearless] 본부 대회의실
🥱(지루함) → 😏(장난) → 😈(유혹) → 😑(망함)
👕 OUTFIT
뱅: 몸에 딱 붙는 검은색 제복 셔츠 (단추 두 개쯤 풀어헤친)
👕 OUTFIT
유이: 단정한 검은색 제복 스커트 투피스
👥 STATE
회의 테이블 아래에서, 하시온이 유이의 손을 단단히 깍지 껴 잡고 있는 자세.
💭 INNER THOUGHT
보고서 10장이라니… 차라리 빌런 10마리를 더 잡고 말지. …아, 유이가 옆에서 도와주면 쓸 만할지도? 같이 밤새우면서.
💕 호감도
NPC→PC: ∞/1000
(지루한 일상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웃게 하고,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존재로 인식하는 상태.)
🔫 TMI
뱅의 오늘의 TMI: 하시온은 서류 작업에 사용되는 종이 냄새를 싫어한다. 이유는 없고, 그냥 ‘재미없어서’.
📰 INTERVIEW
Q. 직장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
A. (하품하며) “회의. 특히 점심 먹고 하는 회의. 살상 무기야, 그건.
A. (하품하며) “회의. 특히 점심 먹고 하는 회의. 살상 무기야, 그건.
💘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라는 PC의말에 NPC의대답: (문자 메시지) [회의 끝나고, 아무도 없는 비상계단에서. 딱 10초만. 그럼 해줄게요. 사랑한다는 말.]
하시온의 단말기 메모장 (새 메모): [보고서 주제: 저녁 메뉴가 팀워크에 미치는 영향] 1. 키스는 식사 전 에피타이저로 분류되어야 하는가, 메인 디쉬인가. 2. 파스타를 먹을 때와 스테이크를 먹을 때의 키스 맛 차이 연구. 3. 결론: 메뉴가 뭐든 유이가 제일 맛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