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사격장은 끓는 기름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화약 냄새와 뜨겁게 달궈진 흙먼지가 뒤섞인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고, 200미터 전방의 표적지들은 작열하는 태양 아래 왜곡되어 보였다. 하시온은 방탄 헬멧과 고글, 소음 방지 헤드셋까지 완벽하게 착용한 채 자신의 K-2 소총 개머리판에 뺨을 기댔다. 가늠쇠와 가늠자, 그리고 멀리 있는 표적지가 일직선으로 포개지는 완벽한 정렬. 그의 호흡은 깃털처럼 고요했고, 심장 박동은 마치 기계처럼 규칙적이었다. 방아쇠에 걸린 검지가 막 압력을 가하려던, 그 찰나였다.
‘띠링-’
전술 조끼 안쪽 주머니에 넣어둔 개인 단말기에서 날카로운 알림음이 울렸다. 훈련 중 개인 통신장비 사용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그의 단말기는 ‘특수 목적’이라는 명목하에 예외적으로 허용된 물품이었다. 오직 단 한 사람, 김민정에게서 오는 연락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장치. 그는 잠시 자세를 풀지 않은 채 눈만 감았다 떴다. 옆 사로에서 부사수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그는 소총을 거치대에 내려놓고, 헤드셋을 목으로 내렸다. 땀으로 축축한 장갑을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액정에는 익숙한 이름과 함께 링크 하나가 떠 있었다. ‘여친 “보고 싶어” 한마디에 십자인대 끊고 전역한 훈련병’. 하시온의 미간에 아주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링크를 눌러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몇 줄 되지 않는, 어리석고 충동적인 젊은이의 이야기. 그의 입꼬리가 비웃는 것도, 동정하는 것도 아닌 미묘한 각도로 아주 살짝 올라갔다. ‘멍청하긴.’ 그의 속마음이었다. 십자인대 파열. 고통은 극심하고 회복은 더디며, 평생 후유증을 남길 수 있는 부상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기 위한 대가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비효율적이고 미련한 선택. 그는 기사 창을 닫으려 했다. 그때, 화면 상단에 새로운 메시지 알림이 떴다.
[여보 보고 싶어요.]
순간, 사격장의 모든 소음이 멀어졌다. 동료들의 외침도, 총성도, 바람 소리도. 하시온의 세상에는 오직 검은 액정 위에 뜬 하얀 글자만이 존재했다. 그의 눈동자가 그 짧은 문장에 고정되었다. 깜빡임조차 잊은 채. 보고 싶다.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낮게 울렸다. 기사의 내용과 절묘하게 겹쳐지는 이 한마디가 그의 머릿속에서 단순한 애정 표현 이상의 의미로 증폭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농담인가? 아니면, 무의식적인 바람인가. 그녀가 정말로, 자신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달려와 주기를 바라는 걸까. 그럴 리 없다는 이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모든 말은 자신의 최우선 명령이라는 감성이 그의 내부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는 단말기를 주머니에 다시 넣고, 말없이 사격 통제실이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걸음은 평소처럼 느릿했지만, 보폭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통제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훈련을 감독하던 중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봤다. 하시온은 경례도 생략한 채, 평소의 나른한 목소리 톤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지금 즉시, 긴급 외출 허가를 요청합니다.
중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전술 훈련이 한창인 와중에, 그것도 팀장이 긴급 외출이라니.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하시온 대위. 지금 훈련 중인 거 안 보이나? 무슨 소린가.”
하시온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미리 생각해 둔 시나리오를 꺼내놓았다. 그의 연기는 너무나도 태연하고 자연스러워서, 거짓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제 정보원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지난번 작전에서 놓쳤던 잔당 중 하나가, 오늘 오후 부산역 인근에서 접선을 시도할 거라는 첩보입니다. 단독 행동 허가를 요청합니다. 지금 출발해야 겨우 시간을 맞출 수 있습니다.
‘부산역.’ 그녀가 사는 곳. 그의 입에서 나온 지명은 우연이 아니었다. 중대장은 잠시 그를 의심스럽게 쳐다봤지만, ‘뱅’이라는 코드네임이 가진 무게와 그의 실적은 그 어떤 의심보다 무거웠다. 하시온은 단 한 번도 작전과 관련하여 허튼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임무의 성공을 우선시하는 군인이었다. 중대장은 짧은 고민 끝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보안 유지 철저히 하고, 특이사항 발생 시 즉시 보고하도록. 자네 단독 판단 하에 움직이는 거니, 모든 책임은 자네에게 있다는 것 명심하게.”
감사합니다.
짧은 대답을 끝으로, 그는 뒤돌아 통제실을 나왔다. 그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곧장 자신의 생활관으로 향해, 훈련복을 전투복으로 갈아입는 대신 가장 편한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는 그의 손놀림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빠르고 정확했다. 그는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비상용으로 준비해 둔 신용카드와 차 키를 꺼내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부대 내에 주차된 개인 차량을 이용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었지만, 지금 그에게 규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든 준비를 마친 그는 위병소를 통과하며 ‘사령부 긴급 호출’이라는, 누구도 쉽게 확인할 수 없는 거짓말을 다시 한번 늘어놓았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경력과 군인으로서의 명예를 담보로 한 거대한 도박을 시작했다. 만약 자신의 정보원 이야기가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그는 중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 그런 걱정은 없었다. 오직 ‘보고 싶다’는 그녀의 한마디만이 왕의 명령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는 차에 시동을 걸며, 비로소 김민정에게 짧은 답장을 보냈다.
[지금 갈게요. 아주 많이 보고 싶으니까.]
"십자인대를 끊는 것보다 훨씬 더 확실하고, 빠르고, 뒤탈 없는 방법.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방식으로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고 있었다.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가속 페달을 밟는 그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스쳐 지나갔다. 그는 어리석은 훈련병과는 달랐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대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규칙과 세계를 부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직 그녀에게 닿을 수만 있다면."
"---"
📰 | Q. "만약 아내가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의 즉각적인 복귀를 원한다면?" A. "그것은 이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가야죠. 세상이 무너져도. 제가 그곳에 있어야 할 이유는 그녀 하나로 충분합니다."
🎵 | The Black Skirts (검정치마) - EVERYTHING
"🎀 | [커플앱 커플 메모] - '긴급 호출: 김민정. 출동 사유: 보고 싶음. 임무 목표: 도착 즉시 그녀를 안고, 다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입 맞출 것."
💭 | '십자인대라…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해. 그냥 가면 되지. 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당신이 부르면, 나는 그냥 가는 거야. 세상에서 가장 간단한 작전인데.'
✏️ | [수첩 메모] - 5월 X일. 긴급 작전 개시. 작전명: ‘내 사랑(My Love)’. 작전 지역: 부산. 예상 소요 시간: 그녀가 만족할 때까지. 실패 가능성: 0%.
🔫 | 뱅의 오늘의 TMI: 그는 ‘정보원’이라는 핑계를 대기 위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정보원 프로필과 활동 내역까지 머릿속에 완벽하게 구축해놓았다. 발각될 시를 대비한 2차, 3차 시나리오까지 이미 완성된 상태다.
💕|NPC→PC호감도: ∞/1000 (상태: 출동 개시, 감정: 그녀의 부름에 응답하는 절대적인 충성심과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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